모든 일엔 때가 있는 법이라지만 공부하는 엄마들의 시간은 거꾸로 가나보다. "학창시절, 어렵고 지루하게만 느껴지던 '역사'라는 학문에서 뒤늦게 재미와 감동을 찾아가고 있다"는 역사 동호회 '신나는 역사 체험단' 회원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즐겁다는 그녀들의 생생한 역사 체험 현장을 찾아가 봤다.
분당구 야탑동에 있는 '웃는 책 도서관'. 그곳이 바로 '신나는 역사 체험단'의 소박한 아지트다. "행복 플러스와는 인연이 아주 깊어요. 이 모임은 행복플러스 덕분에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걸요?" 2008년 6월부터 분당여성회에서 가족 기행단을 이끌어온 단장 오세현(43)씨와 회장 이은정(37)씨가 뜻 맞는 주부들을 모으기로 결심한 건 지난 1월 초. 하지만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막막했어요. 일단 사람이 모여야 하잖아요. 그러던 차에 행복플러스 지역 단신을 통해 모집 공고를 냈죠. 놀랍게도 바로 반응이 오더라고요. 회원 10명이 순식간에 모여서 3월 첫째 주부터 본격적인 모임을 시작하게 됐답니다." 이씨가 밝힌 동호회의 탄생 비화(?)다.
"매주 목요일 오전 10시부터 2시간 동안만큼은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역사를 논하는 재미에 푹 빠져 산다"는 회원들. 만난 지 한 달이 채 안 됐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화기애애한 모습도 잠시, 모임이 시작되자 시종일관 진지한 분위기다.
"일단 선사시대부터 현대사까지 차근차근 정리해보고 있어요. 처음이라 서툰 점도 많지만 함께 공부하다 보니 도움이 많이 되네요." 대학! 【 도서관학을 전공한 덕분에 일찍부터 역사 관련 책들을 접하며, 꾸준히 공부해 왔다는 오세현씨는 지역소식지에 역사 칼럼을 기고할 정도로 소문난 '역사통'이다. 매주 출석 체크는 기본. 책을 읽고 리포트를 제출해야 한다니 부담감도 만만찮을 것 같은데 회원들은 하나같이 손사래를 친다.
◆한달에 한 번씩 역사 탐방, 알고 가니 더 재밌어
"이왕 시작했으니 제대로 해야죠. 단순히 수다 모임이나 취미활동 동아리도 아닌데 어느 정도 부담감은 가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것보다는 역사가 이렇게 재밌는 학문이란 걸 학창시절에 진작 깨닫지 못했다는 사실이 아쉬울 따름이에요." 학부에서 역사를 전공했지만 단 한번도 지금처럼 재미를 느껴본 적이 없었다는 회원 김희은(38)씨는 "매달 마지막 주에 진행되는 역사 탐방이 수십 권의 책을 읽는 것보다 더 큰 재미와 깨달음을 준다"고 고백한다. "지난주에 처음으로 국립중앙박물관엘 다녀왔거든요. 3주간 공부한 걸 몸소 체험했다고 해야 하나? 놀랍게도 그 어떤 공연이나 전시보다 재밌더라고요." 조원자(38)씨의 말처럼 한달에 한 번씩 이론에 대한 확인학습차 떠나는 역사 탐방은 회원들 모두가 손꼽아 기다리는 시간. 서로 머리를 맞대고 의논한 커리큘럼에 맞춰 4월엔 경복궁, 5월엔 역사박물관을 찾아 볼 예정이란다. 비용은 3개월에 6만원씩 내는 회비로 충당한다고. "아시다시피 과거 우리 세대가 공부해왔던 역사는 시험을 위한 암기과목에 불과하잖아요. 그런데 제가 경험해보니 역사는 체험이 병행될 때 훨씬 재밌더라고요." 역사는 지! 루하다는 편견을 대물림하기 싫어 모임에 참가하게 됐다는 박영주(36)씨는 아이에게 선사시대를 가르치기 위해 함께 움집을 만들고, 직접 벽화를 그려서 고구려 문화를 경험시킬 정도로 열성적인 '역사 체험의 달인'이자 모범 회원이다.
◆엄마가 공부하는 모습에 아이들도 역사에 대한 흥미 가져
모임을 시작한 이후로 집 안에서 잔소리가 줄었다는 회원 양희숙(40)씨. 역사를 보는 눈을 키우다 보니 인생과 아이를 바라보는 시각도 많이 달라졌단다. "역사 공부의 핵심은 큰 흐름을 잡아 통으로 보는 거예요. 토막토막 끊어보면 이해의 폭이 좁아지죠. 자식도 마찬가지 같아요. 그 아이의 인생을 길게 봐주면 지금 당장 조바심 낼 필요가 없거든요." 양씨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옆에 있던 류현혜(46)씨도 한 마디 거든다. "요즘엔 아이들보다 제가 먼저 역사책을 읽어요. 잡지나 신문에서 흥미로운 칼럼을 발견하면 꼭 스크랩하고요. 늘 공부를 시키기만 하던 엄마가 공부하는 엄마로 변한 게 아이들에겐 신선한 충격이었나 봐요. 신기하게도 어느새 옆으로 와 같이 책을 읽고 있죠." 처음이라 시행착오도 많겠지만 그만큼의 무궁무진한 가능성도 열어놓고 있다는 '신나는 역사 체험단'. 3개월간의 기본적인 커리큘럼을 마치고 나면 분당 여성회에서 주관하는 토요 가족 기행단의 강사로 봉사할 수 있는 자격도 갖게 된다. "우리 역사가 살아 숨 쉬는 곳이라면 전국 방방곡곡을 누벼보고 싶다"는 정혜령(42)씨의 비장한 각오에 동참하고 싶다면, 주저 말고 ! 체험단의 문을 두드려보자.
<문의> '웃는 책 도서관' (031)702-9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