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도 저물어가고 있다. 8월 중순경이면 이미 가을이다. 가을의 상징인 코스모스가 한들거리고 벼이삭이 햇살에 여물어간다. 절기상으로 입추를 지났지만 여름은 물러날 줄 모르고 막바지 기세를 올리고 있다. 땡볕과 때때로 찾아오는 태풍, 그리고 뒤늦게 휴가를 떠나는 사람들로 8월은 어느 달보다 분주하다. 그 분주함을 뒤로 하고 바다를 만나러 영광으로 간다.
짭찌름한 조기 내음
법성포는 영광 여행 1번지다. 옛 적 중국과 일본 상인들이 드나들며 무역을 했던 곳이고, 이순신 장군이 군량미 확보를 위해 상륙했던 법성포는 영광굴비의 산지로, 흔히 ‘다랑가지(多浪佳地)’라고 불리는 우리에게 아주 친숙한 곳이다. 광주-영광-법성을 잇는 22번 국도의 종점으로 영광읍에서 서북쪽으로 12㎞ 남짓 떨어져 있다. 사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이중환은 지리서 ‘택리지’에서 법성포 포구를 “호수와 산이 아름답고, 민가의 집들이 빗살처럼 촘촘하여 작은 서호로 부른다”고 했다. 서호는 천하제일의 경치를 자랑했던 중국 항저우의 이름난 호수다.
1970년대 말까지만 해도 이곳 법성포구에는 칠산바다를 중심으로 조기어장이 꽤 넓게 퍼져 있었는데 한 번 나갔다 하면 만선은 아니더라도 넉넉한 양의 조기를 잡아왔다고 한다. 이런 형편 때문인지 법성포는 활기에 넘쳤고 외지인들이 뻔질나게 드나들면서 꽤나 흥청거렸단다. 그러나 세월이 흐른 지금 이런 저런 어업 환경의 변화로 그 때 그 모습은 전설처럼 돼 버렸다.
가슴에 안기는 푸른 칠산바다
법성포를 둔 영광은 서해바다의 낭만과 멋을 한껏 느낄 수 있어 외지인들의 발길이 연중 이어진다. 광주-영광-법성을 잇는 22번 국도의 종점인 법성포구에서 시작하는 여행은 수채화 같은 해안도로를 따라 목맥마을, 칠곡 삼거리 등을 거쳐 홍농읍 계마항-가마미해수욕장으로 이어진다. 칠산바다를 가슴에 안고 바닷가를 끼고 도는 해안도로는 정겹고 아늑하다. 특히 해질 무렵에 맞춰 찾는다면 붉은 노을과 칠산바다가 빚어내는 황홀한 풍경을 덤으로 즐길 수 있다.
법성포구에서 홍농 방면 3km 남짓 떨어진 해안가에는 4세기경(384년) 인도 승려 마라난타가 불법을 처음으로 전파하기 위해 상륙한 불교 도래지가 있다. 옛 지명, ‘아무포. 부용포’로도 불리는 이곳은 크고 작은 불교 신앙 시설들이 들어서 있는 현대판 불교공원이다.
여기서 구불구불 이어진 해안도로를 따라 10분쯤 가면 왼쪽으로 계마항이 보인다. 칠산 앞바다의 작은 섬, 송이도와 안마도행 배가 떠나는 곳이다. 계마항에서 정기 여객선이 1일 1편 왕복 운항한다. 1시간 10분소요. 출항 시간은 물때에 따라 수시로 변하므로 계마항입출항신고소(061-356-5112)에 사전 문의해야 한다.
한국의 아름다운 길에 선정된 백수해안도로
가마미해수욕장과 계마항을 둘러보고 법성포로 다시 나와 백수읍을 거쳐 홍곡리-백암리-대신리-구수리-길용리-원불교성지에 이르는 19km의 해안일주도로(백수해안도로)를 타보자. 이 해안도로는 전국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아름다운 길로 드넓게 펼쳐진 갯벌과 엷은 안개로 자욱한 칠산바다, 거북바위 모자바위 형상을 한 기암괴석, 그리고 올망졸망 들어선 해안마을이 수채화 같은 정경을 보여준다. 또 해안길에서 만나게 되는 모래미해수욕장, 장바우 낚시터, 와탄천 배수갑문 등도 눈여겨 볼만하고, 칠산바다가 가슴 가득 안기는 전망대(칠산정)와 해수탕(영광해수온천랜드), 노을전시관도 들어섰다. 노을전시관은 사진 속 노을, 음악 속 노을, 문학 속 노을 등을 주제로 영광의 노을을 소개하고 있다. 칠산정에서 노을전시관까지 2.3㎞ 구간에는 나무데크 산책로인 ‘건강365계단’이 설치돼 있다.
이곳에도 가보세요
시간 여유가 있다면 영광땅 끝자락인 염산면의 설도항에도 가보자. 비산비야의 풍경을 바라보면 그렇게 가다 보면 바둑판처럼 이어진 염전과 소금창고들을 만날 수 있다. 이 일대에는 영백염전을 비롯해 100여 곳이 넘는 염전들이 줄줄이 둥지를 틀고 있다. 이들 염전에서 생산하는 무공해 천일염은 연 4만2000여 톤으로 전국 생산량의 14%를 차지한다. 때가 맞으면 염부가 소금을 긁어모으는 모습을 직접 볼 수 있다.
한편 염산면에서 빼놓지 말고 가볼 곳이 있다. 해안선과 솔밭이 아름답고 오토캠핑이 가능한 백바위해변이다. 백바위는 석영 성분의 갯바위가 눈부시도록 희어서 붙여진 이름. 백바위해변에서 바라보는 광활한 칠산바다는 막힌 가슴을 뻥 뚫어준다.
설도항은 젓갈 산지로 이름난 곳이다. 부둣가에는 황석어젓, 멸치젓, 짜랭이젓(병치새끼젓), 갈치속젓, 까나리액젓 등 다양한 젓갈을 파는 가게들이 늘어서 있다. 특히 새우젓은 6월쯤에 잡아서 3년 이상 묵힌 천일염으로 절인다. 보리새우, 낙지, 꽃게, 백합, 물메기, 서대, 쫄쫄이 미역 등 해산물도 푸짐하다.
◆여행쪽지(지역번호 061)=서해안고속도로 영광IC(23번 국도)→영광읍(22번 국도, 홍농방면)→법성포(22번국도)→홍농(842번 지방도)→가마미해수욕장. 서해안고속도로 고창 나들목→아산 →무장→공음→법성포. 서울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서 영광행 고속버스 이용(40분 간격). 광주, 목포, 전주에서 영광행 직행버스 이용. 영광시외버스터미널(351-3379)에서 가마미해수욕장행 군내버스 이용/15분 간격. 백수해안도로는 법성포 터미널 사거리에서 산 중턱으로 난 포장도로를 따라가면 삼거리가 나온다. 여기서 구수리 이정표를 보고 우회전하면 모래미해수욕장→노을전시관으로 이어진다. 서해안고속도로 영광 나들목-목포방면 12km-불갑면 소재지 좌회전 3.4km-불갑사. 영광에서 23번국도-함평방면 8km-불갑면 소재지-불갑초등학교 앞 좌회전(900m)-왼쪽 산자락으로 작은길-내산서원을 지나 2.5km-불갑사. 영광읍-불갑사행 군내버스 이용. 영광-원불교성지 군내버스 이용, 성지 앞 하차. 백수해안도로를 거쳐 77번 국도를 타면 설도항을 거쳐 향화도항에 이른다.
◆숙박=백수해안도로 근처에 있는 노을하우스, 노을연가펜션, 쉐이리펜션, 놀마루펜션, 마리나베이펜션, 동백펜션, 백수해안답동펜션 등을 권한다.
◆맛집=계마항 주변에 횟집이 많다. 계마항 뒷편 산능선에 자리한 능선횟집은 계마포구와 서해의 낙조를 바라볼 수 있어 전망이 좋다. 법성포구에 굴비와 30여 가지의 반찬이 나오는 한정식집이 많은데 풍성한집, 007식당, 일번지식당 등을 권한다. 영광읍내의 영광청보리한우프라자는 청보리를 사료로 먹인 청보리한우가 맛있다. 1인분에 1만원-2만원. 불갑사 입구의 할매집은 보리밥 정식이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