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고 있는 12월 9일 오후 4시경,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찬성 234표, 반대 56표로 가결됐다.
이에 따라 정국은 탄핵국면에서 조기대선국면으로 전환됐으며, 이후 대선주자들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와 관심도 점점 더 열기를 더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대선주자로 거론되는 이들의 지지율을 보면, 문재인 23.5%, 반기문 18.2%, 이재명 16.6%, 안철수 7.5% 박원순 4.3%, 손학규 4.2%이다. 특히 최근 이 시장 지지율의 급상승세로 인해 이들 중 같은 당 소속인 문재인 전 대표와 이재명 성남시장의 경쟁이 부각되고 있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이 두 인물을 과거 역사 속 인물들에 대입해보고 있다. 예를들어 문재인 전 대표는 위청, 이재명 시장은 곽거병이 오버랩된다.
위청과 곽거병은 모두 중국 전한 한무제 시대에 함께 활약한 명장이다. 두 인물은 같은 시대를 살며 흉노족에 대한 한무제의 대반격에 선봉에 서있던 인물이며, 각각의 개성과 인생궤적도 매우 뚜렷하게 차이를 보였다.
문재인 대표에 대입되는 위청은 대흉노 전쟁에 있어 가장 먼저 부각되고, 가장 오랫동안 큰 실잭 없이 한나라를 수호했던 명장으로, 사기를 기록한 사마천으로부터 "대장군은 사람됨이 어질고 선하고 겸손하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온화한 인품을 당대에 인정 받았던 인물이다.
하지만, 이같은 온화함으로 인해 '따끔한 직언'에는 인색했던지라 강직한 사대부의 덕목은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또한 전쟁에 있어서도 오랜기간 수많은 전공을 세울 수 있었지만 더 없이 신중하게 오로지 압도적인 병력과 숫자를 통한 안정적인 승리를 추구했기에, 난관을 한번에 타파할 수 있는 '천재'의 위용을 보이지 못했고, 이로인해 경력과 입지에 부침을 겪기도 했다.
문재인 전 대표 또한 오랜기간 중앙정계에 몸담으며 더불어민주당을 포함한 야권인사들의 메인이벤터, 즉 '얼굴'의 위치를 지켜왔던 인물이며, 그간의 행보를 통해 크게 모나지 않고 온화한 정치인으로서의 캐릭터를 구축해왔다.
지난 11월 JTBC 뉴스룸에 출연, 손석희 앵커의 '퇴진촉구.조기대선'과 관련한 질문에 대한 신중한 답변도 이같은 그의 성품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하지만 국민들이 원하는 '따끔한 직언'을 피했던지라 최근 문재인 전 대표 스스로 당시 답변을 제대로 못한 것에 대한 후회를 토로할 만큼 그에 대한 양분된 반응도 얻고있다.
다음으로 이재명 시장과 곽거병을 살펴보자. 곽거병은 중국의 유규한 역사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명장으로 꼽히며, 파격적이고 천재적인 전략 운용을 통한 대승을 거듭 거뒀던 '역전의 용사'였다. 전쟁에 있어서도 흉노와의 영역을 완전히 가로질러 1천여리(북경 북서쪽 선화~오르콘 강 상류 바이칼호)를 한번에 진군하며 싸울 정도로 '저돌맹진'이라는 단어에 가장 어울리는 행보를 보였다.
하지만 그 성품에 대한 부정적인 기록들도 보인다. 곽거병은 황제가 내린 술을 강에 쏟을 만큼 오만할 정도로 자신감이 넘쳤고 행동에 거리끼는 바가 없었던 것으로 기록되고 있으며, 정상적인 범주의 용병술을 거부한 '저돌맹진'을 거듭함에 휘하 장병들의 피해도 컸고, 그 또한 이로인한 반동으로 참전 6년만인 24살에 요절함으로서 그 압도적인 커리어를 마감해야 했다.
이 시장 또한 정치적 대립에 있어 '사이다 발언'으로 일컬어지는 매우 강경하고 저돌적인 행보와 '3대 무상복지'로 대변되는 파격적인 캐릭터를 구축하고 있다. 또한 곽거병이 불과 6년 정도의 기간에 압도적인 전공을 자랑함과 같이, 이 시장도 6년간 성남시에서 쌓은 행정경력을 대권행보에 있어 가장 큰 무기로 삼고 있다는 점도 비슷하다.
이와 함께 다소 극단적일 수 있는 정책행보와 강경발언은 그에 대한 극렬한 반대입장을 키웠고, 보수단체와의 법정분쟁 및 경기도와 중앙정부 기관과의 반목 등이 거듭되며 양날의 검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같은 일들이 누구의 탓인지 옳고 그름을 떠나, 분명 시민들의 피해는 있었다.
이같은 역사속 인물의 대입은 한편으로 아무 의미없는 '판타지 소설적 발상'일 수 있다. 하지만, '파격과 저돌성', '온화함과 무난함'으로 대변되는 두 인물들의 기록은 큰 틀에서보면 현 대선주자 2인에게 아주 약간이라도 시사할 점이 있다는 것이 개인적인 견해이다.
결론적으로 역사에서 곽거병과 위청의 퇴장은 조금은 아쉽게 이뤄졌다. 곽거병의 경우 상기했듯이 24살에 나이로 아까운 생을 마감해야 했으며, 위청 또한 한차례 권력의 중심에서 밀린 뒤 이렇다 할 재기 없이 경력을 마무리해야했다.
현 정국은 그야말로 혼돈속에 있으며, 무슨일이든 실제 일어나기 전까지는 어떤 예측도 의미 없을 정도로 다양한 변수를 품고있다. 두 주자 모두 국민의 선택을 받지 못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밥과 사이다는 하나만 먹어도 좋고 같이 먹을수도 있지만, 상황에 따라 둘 다 먹지 않을 가능성도 고려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밥은 때로 볶아지거나 비벼지며 기호에 맞춰져왔고, 사이다 또한 개봉됐다면 항상 탄산이 가득한 채로 있을 수 없다.
이미 6주간 뜨거운 행동을 통해 변혁을 이끌어낸 국민들에 의해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 이같은 국민들의 염원을 앞으로 어떤 비전을 제시하고 어떤 방식으로 실현해야 할 것인지, 이제는 행보를 조정하고 결정해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