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성남시를 비롯한 수도권6개 지자체는 단 한 가지의 이슈로 인해 한창 더워진 날씨 이상의 뜨거운 열기로 뒤덮이고 있다. 시내 곳곳에 플랜카드가 붙어있으며, 시민들의 서명운동이 줄을 잇고있다.
이제는 거의 '멜트다운'에 가까워지는 이 같은 강력한 움직임은 정부가 지난 달 22일 지방자치단체간 재정격차를 완화하겠다며 지방재정 개편안을 발표한 것에 대한 강한 시민 차원의 반발에서 비롯된 것이다.
지방재정개편안을 요약하자면, 재정건전성이 지자체에서 걷히는 세금 중 20%를 추가적으로 정부가 가져가 정부지원을 받고 있는 타 지자체에 분배한다는 것이다.
듣기에 따라 사뭇 괜찮을수도 있는 계획이나, 이미 많은 정.재계인사나 시민들의 우려에서 보여지듯 그 효용성이 큰 의심을 받고있는 상황이며, 향후 큰 부작용도 예측되고 있다.
요즘 취재를 위해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이 지방재정 개편안과 관련한 여러 움직임들을 보자니, 문득 '너무나 유명해진' 역사 속 사례 하나가 오버랩된다.
지난 1865년 영국에서 '붉은 깃발법' 이른바 적기조례라고 불리는 개정안이 세상에 나오게됐다. 세계최초의 교통법으로 남게된 이 법안은 한편으로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정책상의 실수, 즉 권위주의의 상징으로 기록되고 있다.
이 법안이 나오게 된 배경은 당시 영국의 선진적인 산업 상황에서 기인한다. 영국은 1820년대 증기 기관을 탑재한 자동차를 도입하고 28인승의 정기 노선 버스를 운영하는 등 자동차의 실용화가 황금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같은 혁신적인 이동수단의 등장은 국민들에게는 최고의 선물이었지만, 그동안 주민들의 교통편을 책임지던 '마차'에게는 재앙이었다.
이에 당시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은 마차 업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성은'을 내리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적기조례'이다.
적기 조례를 간단히 요약하자면, '마부들을 보호해야 하니 자동차는 반드시 마차보다 느리게 다녀야하며, 마차 뒤에서 달려야 한다'는 것이다. 당시 영국의 증기자동차는 시속 30km의 속도가 가능했지만, 이 같은 정부의 규제에 교외에서는 시속 4마일(6km), 시가지에서는 시속 2마일(3km)의 제한된 속도만을 낼 수 있었다.
잘못된 정부의 규제로 인한 결과는 참담했다. 세계 최초로 자동차를 상용화한 영국의 자동차 산업은 완벽한 몰락의 길을 걷게됐으며, 대량생산체제를 갖추며 자동차 대중화를 이뤄낸 프랑스와 독일, 그리고 이후 미국 등의 다른 국가들에게 뒤쳐진채 한순간에 기술을 수입해야 하는 나라로 전락하게 된다.
당시 영국의 증기 자동차는 아직 대량 생산을 통한 대중화가 진행되지 않았기에 자동차의 수는 많지 않았다. 다수의 마차를 보호하기 위해 소수의 자동차의 희생이 강요된 것이다. 보호의 대상이었던 마차는? 모두가 알다시피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져버렸다. 단 하나의 법안의 출현으로 마차와 자동차 어떤 것도 보호하지 못하고 둘 다 잃게 된 것이다.
이 같은 과거 사례가 최근 이 '지방재정 개편안'과 관련한 일련의 사건들에 덧씌워지는 것이 혼자만의 생각이길 빈다.
현 시점에서 '지방재정 개편안'이 '21세기판 적기조례'가 될 것이라 논하는 것은 분명 시기상조일 수 있다. 하지만, 무조건적인데다 그 효용성이 의심되는 '일방적 희생'이 선발주자들에게 강요되는 부분 등 정말로 많은 면에서 이 두가지 안건이 겹쳐지는 것이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우연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현재 대부분의 지자체가 적자운영으로 정부의 지원 없이는 힘든 상황이기에 지방재정의 건전성을 높여야 한다는 것에는 모든 국민이 동의할 것이다. 하지만, '마차와 자동차' 모두를 살리기 위한 방법으로 조금은 더 의견을 듣고 고민해봐야 할 사항이 있지 않나 생각해본다. 그만큼 더 현명한 결론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고.
정부의 이번 개편안에 대한 반응들은 현재 6개 지자체 시민들로 인해 점점 힘을 얻고 있으며, 또한 조금씩 구체화되는 양상이다. 들불처럼 번지는 이같은 여론에 정부가 어떤 대응과 결정을 내릴 것인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