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
일본 통감이 경운궁(慶運宮)을 덕수궁으로 격하시켰다
 김민수
 2011-11-30 21:27:21  |   조회: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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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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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통감이 경운궁(慶運宮)을 덕수궁으로 격하시켰다

일본 통감이 경운궁(慶運宮)을 덕수궁으로 격하시켰다


김민수 문화재칼럼니스트


임진왜란 후 조선 14대 국왕 선조가 세조의 큰 손자인 월산대군의 사저 경운궁(慶運宮)을 국왕의 시어소(時御所)로 쓰면서 궁(宮)이 되었고 1608년 선조가 승하한 후 15대 국왕 광조(光祖)가 이 경운궁(慶運宮)에서 즉위하면서 경운궁이라는 궁호(宮號)를 붙여주었으나 일제 통감부가 1907년 격하시켰으므로 문화재청은 경운궁(慶運宮) 궁호(宮號)를 환원, 재지정해야 한다. 1623년 16대 국왕 인조가 경운궁(慶運宮)에서 즉위하였으며 1897년 2월 20일 대한제국 고조 광무제(高祖 光武帝)가 러시아 공사관에서 경운궁으로 이어하면서 비로소 대한제국 황궁(皇宮)다운 장대한 전각들을 갖추게 되었으며 1900년 궁장 공사가 완성되고 1901년 경운궁과 경희궁,경운궁과 의정부(議政府)를 연결하는 운교(雲橋)가 가설·개통되었으나 1904년 큰 화재로 대부분의 전각이 소실되었고 1905년 태극전(太極殿)·석어당(昔御堂)·경효전(景孝殿)·함녕전(咸寧殿) 등이 중건되었다. 경운궁(慶運宮)은 경희궁 사이에 후원 상림원(上林苑)과 영성문(永成門) 포덕문(布德門) 대안문(大安門) 인화문(仁化門)이 있으며 조하(朝賀)를 받는 정전 중화전(中和殿),고조(高祖) 광무제의 침전 함녕전(咸寧殿),고조 광무제가 등극한 태극전(太極殿), 귀빈을 접견하던 편전 덕홍전(德弘殿), 어진을 봉안하는 선원전(璿源殿),황실 도서관 중명전(重明殿),접견실·연회장 정관헌(靜觀軒),구성헌(九成軒),환벽정(環壁亭),황태자가 대리청정 시작한 돈덕전(惇德殿), 고조 광무제의 침실과 접견실 석조전(연지(蓮池),거북상),명성황후의 빈전과 혼전 경효전(景孝殿),태조의 어진을 봉안한 흥덕전(興德殿),순명황후(純明皇后)의 혼전(魂殿) 의효전(懿孝殿), 순명황후(純明皇后) 민씨가 붕어한 석어당(昔御堂), 고조 광무제가 외국 사절을 접견한 준명당(浚明堂),어진(御眞)·예진(睿眞)을 봉안한 흠문각(欽文閣), 대한제국 황실 사무와 근대적 광무개혁을 추진한 궁내부(宮內府),최고 군통수기관 원수부(元帥府)가 있다.

1897년 대한(大韓) 황궁(皇宮) 경운궁(慶運宮)으로 이어(移御)한 대한제국(大韓帝國) 고조 광무제(高祖 光武帝)는 10월 12일에 백악(白嶽:북악산)의 남쪽 황단(皇壇)에서 천지(天地)에 고유제를 올리고 대한제국(大韓帝國) 1대 고조 광무제(高祖 光武帝)에 등극하며 천하에 국호(國號)를 정하여 대한(大韓)이라 하고 이 해로써 광무(光武) 원년(元年)을 삼는다고 천명하여 조선시대에 이어 대한시대가 시작되었다. 고조 광무제(高祖 光武帝)는 종묘를 태묘(太廟)로, 사직(社稷)의 신위판(神位版)을 태사(太社)와 태직(太稷)으로 격상하여 고쳤으나 일제가 격하시켰다. 1895년 일본군에 살해된 왕후 민씨(閔氏)를 대한제국(大韓帝國) 명성황후(明成皇后)로 추책(追冊)하고 왕태자(王太子)를 황태자(皇太子)로 책봉(冊封)하였으며 밝은 명을 높이 받들어 황태자가 황제에게 축하 인사를 올리는 진치사의(進致詞儀),문무백관들이 황제에게 축하를 올리는 하표의(賀表儀)를 비로소 거행하였고 역대의 고사(故事)를 상고하여 특별히 대사령(大赦令)을 행하였다.고조 광무제는 일본의 대한제국 침략 전쟁에 말려들지 않기 위해 1904년 1월 23일 국외중립을 선언하였으나 일제는 1904년 2월 8일 러일전쟁 도발하고 대한제국 한성을 공격하여 황궁 경운궁을 점령한 후 1904년 2월 23일 대한제국에 대한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대한제국 영토를 일본의 군사기지로 제공하는 갑진늑약(한일의정서)을 불법 늑결하였다. 일제(日帝)는 러일전쟁 승리를 위해 무력을 동원하여 1905년 2월 대한해(大韓海:Sea Of Korea)의 독도(獨島)를 비롯한 대한국(大韓國)의 군사 요충지를 불법 점령하였다.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제는 대한제국을 강제 병합하기 위하여 1905년 11월 9일 추밀원 의장 이토 히로부미를 특사로 파견하여 을사늑약(乙巳勒約)의 불법 늑결을 대한제국 정부에 강요했으며 11월 17일 불법 늑결된 을사늑약(乙巳勒約)에 대한제국의 실질적인 주권행사의 주체가 통감이라고 규정했다.1907년 헤이그 특사(特使) 파견을 이유로 고조 광무제를 강제 퇴위시킨 일본 통감 이토 히로부미는 경운궁 궁호(宮號)를 덕수궁으로 격하시켰고 반일 정미독립운동이 지속적으로 전개되자 대한제국을 불법 병합하기 위한 간사한 계략으로 황태자에게 지방을 순행(巡幸)하게 하며 황태자의 대리청정(代理聽政: 일제 통감부와 정미칠적의 강박)이 아닌 황태자의 2대 황제 즉위(고조 광무제가 황태자의 대리청정(代理聽政)을 명한 것을 이토 히로부미 일본 통감과 친일 내각이 황제 양위로 둔갑)로 왜곡,선전하였다.


2011-11-30 21:2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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