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
문화재청, 경운궁(慶運宮) 명칭 환원 재지정해야
 김민수
 2011-09-16 08:57:05  |   조회: 2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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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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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 경운궁(慶運宮) 명칭 환원 재지정해야

문화재청, 경운궁(慶運宮) 명칭 환원 재지정해야


경운궁(慶運宮)은 임진왜란 후 선조가 세조의 큰 손자인 월산대군의 사저를 국왕의 시어소(時御所)로 쓰면서 궁이 되었고 1608년 선조가 승하한 후 광조(光祖)가 이 궁에서 즉위하면서 경운궁이라는 궁호를 붙여주었으나 일제가 격하시켰으므로 경운궁(慶運宮) 명칭 환원, 재지정해야 한다. 1623년 인조가 경운궁에서 즉위하였으며 1897년 2월 20일 대한제국 고조 광무제가 러시아 공사관에서 경운궁으로 이어하면서 비로소 대한제국 황궁다운 장대한 전각들을 갖추게 되었으며1900년 담장 공사가 완성되고 1901년 경운궁과 경희궁,경운궁과 의정부(議政府)를 연결하는 운교(雲橋)가 가설·개통되었으나 1904년 큰 화재로 대부분의 전각이 소실되었고 1905년 태극전(太極殿)·석어당(昔御堂)·경효전(景孝殿)·함녕전(咸寧殿) 등이 중건되었다.1907년 헤이그 특사(特使) 파견을 이유로 고조 광무제를 강제 퇴위시킨 일본 통감 이토 히로부미는 경운궁 궁호를 격하시켰고 반일 정미독립운동이 지속적으로 전개되자 일본의 대한제국 침략이 아닌 대한제국의 시정개선(施政改善)을 하고 있음을 한국인에게 선전할 묘안을 강구하였고 대한제국 황태자가 지방을 순행(巡幸)하며 황태자의 대리청정(代理聽政: 일제 통감부와 정미칠적의 강박)이 아닌 황태자의 2대 황제 즉위(고조 광무제가 황태자의 대리청정(代理聽政)을 명한 것을 이토 히로부미 일본 통감과 친일 내각이 황제 양위로 둔갑)로 왜곡,선전하였다. 경운궁과 경희궁 사이에 후원 상림원(上林苑)과 영성문(永成門) 포덕문(布德門) 대안문(大安門) 인화문(仁化門)이 있으며 조하(朝賀)를 받는 정전 중화전(中和殿),고조(高祖) 광무제의 침전 함녕전(咸寧殿),고조 광무제가 등극한 태극전(太極殿), 귀빈을 접견하던 편전 덕홍전(德弘殿), 어진을 봉안하는 선원전(璿源殿),황실 도서관 중명전(重明殿),접견실·연회장 정관헌(靜觀軒),구성헌(九成軒),환벽정(環壁亭),황태자가 대리청정 시작한 돈덕전(惇德殿), 고조 광무제의 침실과 접견실 석조전(연지(蓮池),거북상),명성황후의 빈전과 혼전 경효전(景孝殿),태조의 어진을 봉안한 흥덕전(興德殿),순명황후(純明皇后)의 혼전(魂殿) 의효전(懿孝殿), 순명황후(純明皇后) 민씨가 붕어한 석어당(昔御堂), 고조 광무제가 외국 사절을 접견한 준명당(浚明堂),어진(御眞)·예진(睿眞)을 봉안한 흠문각(欽文閣), 대한제국 황실 사무와 근대적 광무개혁을 추진한 궁내부(宮內府),최고 군통수기관 원수부(元帥府)가 있다.

2011-09-16 08:5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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