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
청와(靑瓦)
 김민수
 2012-06-24 11:29:06  |   조회: 2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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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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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靑瓦)

청와(靑瓦)




청와(靑瓦)는 조선시대에 궁궐에서도 정전이나 편전 등에만 제한적으로 사용하였고 현존하는 청와(靑瓦) 건물도 창덕궁 선정전이 유일하다. 조선시대 전기에는 경복궁의 침전(寢殿),궁문(宮門),경회루(慶會樓)를 청와(靑瓦)로 이으려 하였고 창경궁의 인양전과 명정전 등을 청와(靑瓦)로 이으라는 하명(下命)도 있었다. 경복궁의 침전은 청와(靑瓦) 조각이 발굴된 바 있다. 조선시대 후기에는 15대 국왕 광조에 의한 궁궐 영건 당시 서궁 인경궁에 청와(靑瓦)건물이 3동 지어졌는데 인조 대에 훼철되면서 창덕궁 선정전,경훈각,창경궁 통명전으로 이전,건립되었다. 광조 대에는 역관(譯官) 방의남(方義男)이 중국에서 황와(黃瓦), 청와(靑瓦) 제조법을 배워와 황와(黃瓦), 청와(靑瓦)가 제작, 궁궐건축에 사용되어 국왕의 귄위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조형물로 여겨졌다. 궁궐 이외에 청와(靑瓦)가 사용된 곳은 조선 전기에는 원각사,장의사(藏義寺), 탕춘대(蕩春臺)와 같이 왕실 관련 불교사찰이나 국왕이 행차하던 명승지에 조선 후기에는 관왕묘(關王廟),영은문(迎恩門) 등에 청와(靑瓦)가 쓰였다.

청와(靑瓦)는 세조,연조,광조 대에 생산되어 사찰과 궁전 건축에 사용되었으며 선정전(宣政殿)은 조선 국왕이 평소에 정사를 펴던 편전으로 조선시대 궁궐에서 유일하게 청와(靑瓦)가 남아 있는 건물이고 1830년에 그려진 동궐도에 의하면 선정전 지붕이 초록색으로 그려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세조는 1461년에 간경도감(刊經都監)을 설치하여 방대한 양의 불전(佛典)을 번역, 간행하고 원찰(願刹) 원각사(圓覺寺)를 건설하면서 법당 지붕용으로 8만 장이나 되는 방대한 량의 청와(靑瓦)를 생산케 했다. 청와(靑瓦) 제조 방법은 세종실록에 청와(靑瓦)를 염초(焰硝)로 만든다는 기록이 있고 예종실록에도 ‘청와(靑瓦) 생산에 필요한 연철을 김성현에서 채취하여 보냈다’라고 적었으며 '연조실록'에는 ‘함경도 단천에서 바친 연 6,900근에서 은을 제련해 낸 연슬러그로 청와(靑瓦)를 만들게 했다’고 적었다.

청와(靑瓦)의 기본원료인 찰흙의 크기는 0.01밀리미터 이하의 점토질로 재료가 미세할수록 팽창성과 수축성이 적어지면서 균열이 적어진다. 청와(靑瓦)의 원료로 염초(焰硝)를 사용하는 것은 현대의 질산칼륨을 말하고 질산칼륨의 용융점은 330도로 화합물의 용융점을 낮추는 작용을 할 뿐만 아니라 흡수성이 적어 녹여지는 화합물이 골고루 융합되게 함으로써 기와의 표면을 고르고 매끄럽게 만든다. 납과 아연이 상당량 포함되어 있는 연슬러그(납 찌꺼기 덩어리)는 청와(靑瓦)의 푸른 색깔을 내는 원료이다. 납은 푸른색이 흰색과 조화된 유연한 금속으로 용융점이 327〜400도에 불과하지만 알칼리와 철산화물 등이 들어있는 고령토와 연슬러그(납 찌꺼기 덩어리)를 섞어 만든 유약으로 기와 표면에 발라 1,000-1,150도에서 소성(燒成)하면 청와(靑瓦)의 푸른색이 나타난다.

2012-06-24 11:2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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