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
금성당(錦城堂)
 김민수
 2012-06-18 22:16:08  |   조회: 2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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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당(錦城堂)


금성당(錦城堂)은 숙부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유배된 어린 단종의 복위를 도모하다가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세종대왕의 여섯째 아들 금성대군(錦城大君)의 영혼을 위로하려고 세운 한옥 나라굿당집이며 서울시 은평구 진관동에 있고 1880년대 초반 이전에 건립한 것으로 추정된다. 건축물 형식은 전면 3칸에 서쪽으로 2칸을 붙여 지은 역 ‘ㄱ’자형이다. 본당 안쪽에 다락방이 붙어 있었으나 촛불이 넘어져 불이 나는 바람에 다락방 부분이 없어졌다. 그때 다락방을 대신하여 방 1칸을 다시 지었다. 본당 정면은 하나로 접을 수 있도록 되어 있는 4짝의 격자 문살 분합문(分閤門)을 좌우로 달아 접어올려 위로 고정시킬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금성대군의 탄신일인 음력 3월 24일에 시루떡 등으로 공양을 올린다. 19세기 무속신앙의 한 단면을 볼 수 있는 전통적 당집 양식의 무속 관련 건축물 금성당은 충렬화주당, 왕십리수풀당과 함께 무가에 자주 등장하는 사외삼당(私外三堂), 즉 도성 밖에 있는 성황당의 하나이며 안에는 금성대왕, 삼불사 할머니, 별상님 등 무신도 8점과 각종 무구류(巫具類), 무복(巫服), 제기와 실제 무속 의례에 사용한 물품이 많이 남아 있고 고조 광무제의 탄신일에 돈 7백 냥을 내렸다는 명성황후가 황태자를 위해 명산대천 및 성황당에 치성드린 물품의 목록과 궁궐 안의 각 전각에 고사지내는 물품목록인 위축발기(爲祝件記)문과 고조 광무제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던 전패(殿牌:임금의 어진을 대신하는 목패)가 남아 있는 걸로 보아 대한제국 황실의 굿당으로 사용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2012-06-18 22: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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