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
운종가(雲從街) 종루(鐘樓) 보신루(普信樓)
 김민수
 2012-06-15 13:07:55  |   조회: 2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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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종가(雲從街) 종루(鐘樓) 보신루(普信樓)




한성(漢城)의 중앙에 위치한 많은 사람이 구름 같이 모였다 흩어지는 거리라는 뜻의 운종가(雲從街)에 종루(鐘樓)가 있었고 그 이름이 보신루(普信樓)이며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의 5상(五常)의 하나인 보신루(普信樓)에서 파루(罷漏:새벽 4시에 33번)와 인정(人定:밤 10시에 28번)에 종을 울려 도성(都城)의 출입시각을 알려주었다. 보신루 동종(普信樓 銅鍾)은 1985년까지 보신루(普信樓)에서 제야(除夜)의 종을 칠 때 사용되었으며 조선 세조 14년(1468) 주조(鑄造)한 보신루 동종(普信樓 銅鍾)은 명문(銘文)이 남아있어 주조 연대를 확실히 알 수 있는 중요문화재이므로 고궁박물관으로 이관하여 전시,교육홍보하여야 한다. 보신루 동종(普信樓 銅鍾)은 돈의문(敦義門) 안 현 서울시 중구의 정릉(貞陵)에 있었던 신덕왕후의 원찰(願刹) 흥천사(興天寺)에 있었으나 흥천사가 폐사(廢寺)되자 원각사(圓覺寺)로 옮겨졌다.국가의 안녕과 국왕의 평강(平康)을 비는 원찰(願刹)·국찰(國刹) 원각사는 1467(세조 13)년 4월 초파일 10층석탑의 완공과 함께 낙성되었고 1488년(성종 19)에 화재로 소실되어 원각사지10층석탑(圓覺寺址十層石塔)과 원각사 창건의 내력을 적은 대원각사비(大圓覺寺碑)가 남아 있다. 임진왜란(壬辰倭亂) 이후 보신루(普信樓)에서 파루(罷漏:새벽 4시)와 인정(人定:밤 10시)에 종을 울려 도성(都城)의 출입 시각을 알린 보신루 동종(普信樓 銅鍾)은 높이 3.18m, 무게 19.66톤의 큰 종으로 전형적인 조선시대 초기의 종 형태를 하고 있으며 음통(音筒)이 없고 2마리 용이 동종의 고리 역할을 하고 있다. 동종(銅鍾)의 몸통에는 3줄의 굵은 띠를, 동종 입구 위로는 일정한 간격으로 2줄의 띠를 두르고 있고 동종(銅鍾)의 연대를 알 수 있는 긴 문장의 글이 있다.
2012-06-15 13: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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