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
경덕궁수리소의궤
 김민수
 2012-06-15 12:36:48  |   조회: 2773
첨부파일 : -
경덕궁수리소의궤



경덕궁수리소의궤(慶德宮修理所儀軌)는 1693년(숙종 19) 6월 경덕궁(慶德宮)의 대전(大殿)과 광명전(光明殿)을 수리하는 과정을 기록한 의궤이며 혜민서(惠民署)에 의궤청을 마련하고 어람용, 예조에 보관할 2건을 만들었고 프랑스에 어람용 1건이 유일본으로 남아 있다.경덕궁(慶德宮)은 경희궁(慶熙宮)을 말하며 1616년(광조 8)에 광조가 인왕산 아래 자수궁, 인경궁의 남쪽에 창건하였다. 광조는 경덕궁에 들어가지 못하였고 인조반정으로 인조가 즉위하였을 때 창덕궁과 창경궁이 1623년 인조반정(仁祖反正)과 1624년(인조 2) 이괄(李适)의 난으로 불타버렸기 때문에 경덕궁(慶德宮)에서 정사를 보았으며 1760년(영조 36) 경덕궁은 원종의 시호를 피휘하기 위하여 ‘경희궁’으로 개칭하였다.경덕궁수리소의궤는 좌목(座目)ㆍ계사(啓辭)ㆍ이문(移文)ㆍ감결(甘結)ㆍ품목(稟目)ㆍ수본(手本)ㆍ양전잡물(兩殿雜物)ㆍ대전사역공장(大殿使役工匠)ㆍ광명전사역공장(光名殿使役工匠)의 순으로 되어 있다.좌목을 보면 당상(堂上)에는 호조 판서 류명천(柳命天), 공조 판서 유하익(兪夏益)ㆍ정유악(鄭維岳)이 임명되어 공사를 총괄하였고, 낭청에는 호조ㆍ병조ㆍ공조의 낭관(郎官) 3인, 감역관(監役官)에 선공감(繕工監) 관리 2인이 임명되었다.계사를 보면 3월 12일에 공사를 시작하라는 명령이 있었고 5월 17일에 단청 작업을 위해 화승(畵僧) 18명을 동원하였다. 5월 20일에는 흥화문(興化門) 밖 북쪽의 도로 공사를 하다가 임종(林鐘)과 고선종(姑洗鍾)을 발굴하여 장악원(掌樂院)으로 보냈고 6월 25일에 공사를 완료하였다.이문을 보면 6월 22일에 공사에 참가한 사람들의 명단을 올렸고 이튿날 이에 의거하여 공로자에게 시상을 하였다.
2012-06-15 12:36:48
124.53.159.7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