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
독립문(獨立門)
 김민수
 2012-06-13 23:44:47  |   조회: 2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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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문(獨立門)



조선 태종 7년(1407)에 모화루를 처음 세우고 세종 12년(1430)에 모화관이라 이름을 바꾸고 홍살문을 세웠다. 중종 32년(1537)에 홍살문보다 격식을 갖춘 형식의 문을 만들고 영조문이라 하였다가 중종 34년(1539)에는 영은문(迎恩門)이라 이름을 고쳤으며 연주문·연은문이라고도 했다. 근대적 제도개혁을 추진하였던 갑오개혁(1894∼1895)이 외국의 간섭으로 성공하지 못하고 나라의 자주독립 또한 이루지 못하였다. 한민족의 독립을 위해 외국의 간섭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서재필이 조직한 독립협회의 주도하에 중국 사신을 맞이하던 영은문을 헐고 그 터에 독립문(獨立門)을 세우게 됐다. 1896년 한민족의 자주 독립을 다짐하는 의미로 영은문(迎恩門)을 헐고 그 자리에 독립문을 세우면서 그 기둥을 받치던 주초만 남게 되었다. 남아 있는 2개의 주초는 2단의 사각형 받침돌 위에 기둥처럼 길게 세워져 있다. 위에 놓인 받침돌에는 2개씩의 안상(眼象)이 조각되어 있다. 화강석을 쌓아 만든 독립문의 중앙에는 무지개 모양의 홍예문이 있고 왼쪽 내부에는 정상으로 통하는 돌층계가 있다. 정상에는 돌난간이 둘러져 있으며 홍예문의 가운데 이맛돌에는 오얏꽃(자두꽃) 무늬가 새겨져 있다. 그 위의 앞뒤에는 한글과 한자로 ‘독립문’이라는 글씨와 그 양 옆에 태극기(太極旗)가 새겨져 있다.
2012-06-13 23:4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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