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
마패(馬牌)
 김민수
 2012-06-13 23:19:32  |   조회: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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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패(馬牌)



조선 국왕은 지방관의 감찰과 백성의 사정을 조사하기 위해 비밀리에 암행어사(暗行御史)를 임명하고 각 지방에 파견하여 비밀 감찰의 임무를 부여하였으며 암행어사는 성종 대 지방 수령의 비리가 크게 문제가 되면서 성립하였고 조선 후기 3정의 문란이 심해지면서 더욱 활발히 시행되었다.암행어사는 당하관 관리 가운데 임의로 추첨하여 임명했지만, 당상관을 암행어사로 임명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으며 전기에 없던 암행어사가 후기에 일반화되었다. 암행어사는 봉서(封書)와 사목(事目), 마패(馬牌)와 유척(鍮尺)을 받았는데 봉서는 암행어사에 임명되었음을 알리는 문서이고, 사목은 자세한 임무와 파견 지역이 적힌 문서이고 마패는 역참에서 역졸과 역마를 징발할 수 있는 증빙이었으며, 이는 중앙에서 파견된 관리만이 휴대할 수 있었으므로 암행어사의 신분증명이 되기도 하였으며 유척은 놋쇠로 만든 자로 암행어사가 지방 관청의 도량형을 검사하여 되나 자를 속이는지 판별하는 표준 자로 쓰였다.

마패(馬牌)는 상서원(尙書院)에서 발행하였고 관리들이 공무로 지방 출장을 갈 때 역(驛)에서 말을 징발할 수 있는 증빙 수단으로 지름이 10cm 정도이며 한쪽 면에는 상서원인(印)의 자호(字號)와 연월일을 새기고 다른 한쪽에는 1 ~ 10마리의 말을 새겨 그 수효에 따라 지방 출장가는 관리에게 말을 내 주었는데 국왕은 10마패, 영의정은 7마패를 사용했다.마패(馬牌)는 암행어사(暗行御史)의 인장(印章)으로 사용되었고 공무가 끝나면 다시 반납해야 했다. 관찰사와 대등한 권한을 가진 암행어사는 임명받은 지방에 도착하면 변복하고 지방을 염탐하였고 염탐을 마치면 고을에 들어가 관가의 대청에 올라 공문서와 관가 창고를 검열하였는데, 이를 출도라고 하였으며 암행어사가 출도할 때는 역졸이 마패를 손에 들고 암행어사 출도를 크게 외쳤다. 억울한 죄인이나 재판 사례가 있으면 재심하여 해결하고 관리의 부정이나 비행이 발견되면 창고를 봉인하는 봉고(封庫), 수령의 직책을 박탈하는 파직(罷職)하였다.
2012-06-13 23: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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